고려처용가의 성격
페이지 정보
작성일 20-08-18 15:30본문
Download : 고려처용가의 성격.hwp
(4) <처용가>의 연행에 따른 변이
.
고려처용가의 성격
고려처용가의 성격
(1) 고려 <처용가>의 연행 양상
⑤ 처용의 아내가 무척 아름다웠기 때문에 역신이 흠모해서 사람으로 변하여 밤에 그 집에 가서 남 몰래 동침했다. 맹세코
다음은 『삼국유사』 권2 「처용랑망해사」 조의 내용이다. 그만큼 향가 <처용가>는 사람들의 상식 속에 살아 있는데, 우리가 살펴볼 고려 <처용가>는 그 존재조차 미미하고, 안다고 해도 향가 <처용가>의 아류 쯤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탈을 보며 자연스레 떠올린 것은 역신과 처용의 이야기, 바로 <처용가>였다. 그 노래는 이러하다. - 목차 -
3. <처용가>의 전승양상
.
③ 이에 왕은 일을 맡은 관원에게 명하여 용을 위하여 근처에 절을 짓게 했다.
2. 향가 <처용가>와의 상관관계
Ⅲ. <처용가>의 의미 해석
1. <처용가>의 배경설화
고려처용가의 성격
① 제 49대 헌강왕 때에는 서울로부터 지방에 이르기까지 집과 담이 연하고 초가는 하나도 없었다. 그 중의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로 들어가서 왕의 정사를 도우니 그의 이름을 처용이라 했다.
.
레포트 > 인문,어학계열
Download : 고려처용가의 성격.hwp( 23 )
⑥ 둘은 내해이고 둘은 뉘해인고. 본디 내해지만 빼앗겼으니 어찌할꼬
(3) 속악가사로의 전환
고려처용가의 성격 고려처용가의 성격 고려처용가의 성격 고려처용가의 성격 고려처용가의 성격 고려처용가의 성격 - 목차 - Ⅰ. 여는 말 Ⅱ. <처용가>에 대한 개관 1. <처용가>의 배경설화 2. 향가 <처용가>와의 상관관계 3. <처용가>의 전승양상 (1) 고려 <처용가>의 연행 양상 (2)향가 <처용가>와 설화의 수용 (3) 속악가사로의 전환 (4) <처용가>의 연행에 따른 변이 Ⅲ. <처용가>의 의미 해석 Ⅳ. 고려 <처용가>의 성격 1. 무가로서의 성격 2. 연행되는 놀이로서의 성격 Ⅴ. 맺는말
고려처용가의 성격





Ⅰ. 여는 말
1. <처용가>의 배경설화
(2)향가 <처용가>와 설화의 수용
④ 동해의 용은 기뻐해서 아들 일곱을 거느리고 왕의 앞에 나타나 덕을 찬양하여 춤을 추고음악을 연주했다. 왕은 아름다운 여자로 처용의 아내를 삼아 머물러있도록 하고 또 급간이라는 관직까지 주었다. ‘처용탈, 처용무’와 같이 여러 모습으로 후대까지 발전한 <처용가>는 누구나 한번쯤 그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만한 유명한 작품이다. “이것은 동해용의 조화이오니 마땅히 좋은 일을 해서 풀어야 할 것입니다”
Ⅱ. <처용가>에 대한 개관
⑦ 그때 역신이 본의 모양을 나타내어 처용의 앞에 끓어 앉아말했다.
언젠가 역병을 쫓는 의미로 사용된다던, 박물관에 걸린 처용탈을 본 적이 있다. 왕이 괴상히 여겨 좌우 신하들에게 물으니 일관이 아뢴다.
설명
Ⅳ. 고려 <처용가>의 성격
다. 동경 밝은 달에 밤 들어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 가랑이 넷일러라
1. 무가로서의 성격
고려처용가의 성격
고려처용가의 성격
2. 연행되는 놀이로서의 성격
고려처용가의 성격
고려처용가의 성격
향가 <처용가>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향가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설화와 함께 전하는 설화적인 가요로 볼 수 있으며 고려가요 <처용가>는 향가 <처용가>에서 전승된 것이므로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처용가>의 배경설화를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더불어 향가 <처용가>의 성격에 마주향하여 도 간략히 알아보고 고려<처용가>와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도 살펴, 사람들이 오랫동안 잊고 지낸 고려 <처용가>를 다시 한 번 우리의 의식 속에 되살릴까 한다. 따라서 본 발제에서는 <처용가>의 창작배경을 시작으로 향가 <처용가>에서 고려<처용가>로의 전승 과정을 살펴보고 본격적으로 고려<처용가>의 성격에 마주향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고려 <처용가>는 신라시대의 향가 <처용가>를 계승한 작품이지만 분명 형식상, 내용상의 차이 또한 존재한다.
순서
고려처용가의 성격
Ⅱ. <처용가>에 대한 개관
Ⅴ. 맺는말
② 어느 날 대왕이 개운포에서 놀다가 돌아가려고 낮에 물가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서 길을 잃었다. “내가 공의 아내를 사모하여 이제 잘못을 저질렀으나 공은 노여워하지 않으니 감동하여 아름답게 여기는 바입니다. 왕의 명령이 내리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으므로 그 곳을 개운포라 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처용탈을 보며 떠올리는 작품은 향가 <처용가>라고 할 수 있다. 처용이 밖에서 자기 집에 돌아와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자 이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물러나왔다. 음악과 노래가 끊이지 않았고 바람과 비는 사철 순조로웠다.